35화 「차에서 기다려요」
[고민게시판] 남편 시험을 이번엔 말리는 게 맞을까요
익명 · 30대 · 여
남편 사정을 먼저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2년 5개월 전에 하던 가게를 닫았습니다. 본인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같은 건물 2층에 같은 업종이 들어왔습니다.
그 뒤로 자격증 시험을 네 번 봤습니다. 아침 7시에 도서관에 가고, 저녁에 설거지도 다 해 놓습니다. 집에서 노는 사람 아닙니다.
다섯 번째가 11월 8일입니다.
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마트 계산대에 있고, 월·수·금은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입주 청소를 나갑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몸만 쓰면 되니까요.
작년에는 제가 보라고 했습니다. 올해도 그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이번엔 그냥 두는 게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ㄴ 댓글 본인이 하겠다는데 왜 말려요. 님이 다 해 주니까 저러는 거죠
ㄴ 댓글 두 가지 일 하시면서 그런 걱정까지 하시는 거 보면 진짜 대단하세요
ㄴ 댓글 솔직히 이제 그만하라고 하셔야 해요. 몇 년을 더 보실 건가요
커피가 두 잔 올라왔다. 한 잔은 뚜껑에 빨대 구멍이 그대로 막혀 있었다.
"이거 하나는 식어도 괜찮아요."
"그럼 그쪽은 그냥 두고 시작할게요."
서른아홉이고 마트 계산대 7년차다. 앉으면서 식은 잔을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겨 놓았다. 말하는 사이사이에 조금씩 더 당겼다.
마트 앞치마를 접어서 가방 위에 올려놓았다. 이름표가 위로 와 있었다.
보온병을 열어 한 잔 따랐다. 컵을 두던 자리가 2주째 비어 있어서, 거기 놓지 않고 통 옆에 놓았다.
"한 분 더 오시나요."
"······차에서 기다려요. 남편이요."
"올라오시게 할까요."
"아니에요. 그 사람은 이런 거 안 좋아해요."
"알겠어요."
남편은 마흔둘이다. 2년 5개월 전에 가게를 닫았고, 그 뒤로 시험을 네 번 봤다. 네 번째가 올해 7월 12일이었고 결과는 7월 말에 나왔다.
"그 사람 아침 7시에 나가요. 도서관 열기 전에 가서 기다려요."
"그렇게 하신 지가 얼마나 됐어요?"
"2년 5개월이요. 비 오는 날도 가요."
"선생님 하루는 어떻게 되세요?"
"9시부터 4시까지 계산대 보고, 월·수·금은 6시부터 10시까지 입주 청소 나가요. 청소는 둘이 한 조라서 제가 빠지면 짝이 혼자 해요. 저는 괜찮아요. 몸만 쓰면 되니까."
같은 라인에 김 선배가 있다. 예순이고 2년째 사위가 일을 안 한다.
"그 얘기는 서로 안 해요. 그 집도 사정이 있으니까요."
가계부 사이에 접어 끼워 둔 메모지를 꺼냈다. 시험 날짜와 접수 기간, 응시료, 시험장이 적혀 있었다. 접힌 자리가 희어져 있었다.
"이건 남편분 글씨예요?"
"제가 적었어요."
"제가 글씨 쪽을 잘못 짚었습니다." 종이를 돌려 놓았다. "이건 선생님이 챙기시는 거네요."
"그 사람은 이런 거 잘 안 챙겨서요. 머리가 복잡하면 날짜 같은 건 넘어가잖아요."
"물으러 오신 건 뭐예요?"
"이번엔 말려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두는 게 나은지요. 작년에는 제가 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봤고요."
"말리는 게 맞는지는 제가 볼 게 아니에요. 그건 두 분이 정하실 거고요." 메모지를 그쪽으로 반 뼘 밀었다. "대신 같이 볼 수 있는 게 있어요. 선생님이 가져오신 두 갈래에 누가 뭘 하는지요."
"네."
"가져오신 게 두 갠데 둘 다 남편분이 하는 일이에요. 하나는 또 보는 거고 하나는 안 보는 거예요. 선생님이 하시는 건 거기 없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 정하는 거라서요."
"맞아요. 그래서 선생님 질문이 아니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그러면 저는 뭘 물어요."
"조금만 더 보죠. 순서는 아주 잘 적어 오셨어요." 메모지의 둘째 줄을 짚었다. "접수 기간이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로 적혀 있어요. 오늘이 10월 11일이고요."
"네."
"접수는 누가 해요?"
"그 사람이 해요."
"하셨어요?"
"······안 물어봤어요."
"2년 5개월 동안 날짜는 선생님이 다 적어 두셨는데요."
"적는 건 제가 하고, 넣는 건 그 사람이 해야 되니까요."
"작년에는 누가 넣으셨어요?"
"······작년에는 제가 했어요. 아이디 만들어서요."
"올해는요."
"올해는 안 했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그 생각은 언제 하셨어요?"
"8월쯤이요. 그때 정했어요."
창밖에서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앉았다.
"남편분은 1시간 동안 아래 차에 계셨어요. 이런 걸 안 좋아한다고 하신 건 선생님이고요."
"그 사람은 원래······" 그러고 말을 멈췄다. 잔을 당기던 손도 멈췄다.
"7월 말에 결과 나왔을 때는 뭐라고 하셨어요?"
"······그때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이번엔 안 볼까, 라고요."
"선생님은요."
"무슨 소리야, 했어요."
"그 말 뒤에 두 분이 더 얘기하셨어요?"
"아니요. 그냥 밥 먹었어요."
"지금 대답 안 하셔도 돼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두 분뿐이니까요."
그가 한참 있다가 물었다.
"그 사람은 왜 그 말을 한 번만 하고 다시 안 할까요."
"그건 선생님이 물어서 들어야 답이 돼요. 제가 짐작하면 그건 또 제가 지어 주는 거고요. 대신 하나는 분명해요. 7월에 그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이 남편분이라는 건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셨어요."
"······."
"제가 그 말을 안 하면요." 그가 컵을 보고 말했다. "그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돼요."
처음 가져온 질문 — "남편의 다섯 번째 시험을 이번엔 말리는 게 맞습니까?"
진짜 질문 — "남편이 자기 사정을 직접 말하는 자리를, 저는 왜 2년 5개월 동안 비워 두지 않았습니까?"
나무 통을 끌어다 놓고 세었다. 쉰이었다. 한 번 더 세었다. 쉰이었다.
지난주에는 마흔아홉이었다. 그때는 안 쓰는 한 개가 없어진 것으로 보고 그대로 썼다.
"두 번 세시네요."
"지난주에 제가 마흔아홉이라고 셌어요. 오늘은 두 번 다 쉰이에요."
"하나가 어디 들어가 있었겠죠. 여기 사람 많이 오잖아요. 누가 만졌다가 놓고 갔을 수도 있고요."
"그건 선생님이 지어 주신 사정이에요. 지금 여기 쉰 개가 있고, 없어진 건 없습니다."
그가 식은 잔을 반 뼘 더 당겼다.
"한 개는 손대지 않고 둬야 해요. 지난주에는 둘 게 없었습니다. 쉰 개를 다 썼고요. 그건 뽑은 게 아닙니다."
"그분한테 말씀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난주 장에 이름을 안 적었어요."
한 개를 빼서 뚜껑 위에 올려 두고 마흔아홉으로 시작했다. 여섯 번을 세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고, 다 되고 나서야 물었다.
"그 한 개는 왜 안 쓰는 거예요?"
"쓰지 않기로 돼 있어요. 왜인지는 적힌 데가 없고요."
나온 것은 뇌화풍(雷火豊)이었다.
"풍(豊)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릇에 가득 담아 올린 모양이에요. 많다는 글자예요."
"좋은 거네요."
"많으면 좋다는 쪽으로 읽히는데, 그런 말은 안 적혀 있어요. 장 위에 적힌 건 의일중(宜日中)이에요. 해가 가운데 있을 때가 마땅하다는 말이고, 많다는 판정이 아니라 시각이에요."
"아래 세 칸이 불이고 위 세 칸이 우레예요. 밝은 것과 큰 소리가 한 장에 같이 있어요."
"움직인 칸은 위에서 두 번째고요. 내장 유경예 길(來章 有慶譽 吉)이라고 돼 있어요."
"뭐가 온다는 거예요?"
"장(章)은 밝은 무늬예요. 밝은 것이 온다는 말인데, 온다고 적혀 있으니 밖에서 오는 거예요. 그다음이 경사와 기림이고, 맨 뒤에 좋다고 붙어 있어요."
"좋다고 적혀 있잖아요."
"적혀 있어요. 그런데 그 앞에 붙은 게 기림이에요. 기림은 남이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됐다는 말은 이 칸에 없어요."
"······남이 하는 말."
"대단하다고 하시는 분이 몇 분이에요?"
"다들 그래요."
"이름을 들려주시겠어요?"
이름은 늦게 나왔다.
"형님이랑, 같은 라인 김 선배요."
시누이는 쉰셋이고 작년에 이혼했다. 식당에 나가면서 매달 삼십만 원을 보내고, 보낼 때마다 문자를 같이 보낸다고 했다.
"형님도 형편이 그런데 그걸 보내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두 분 다 선생님 편이신 건 알겠어요. 그래서 세어 본 거예요." 노트는 펴지 않았다. "두 분이에요. 2년 5개월 동안 선생님한테 온 건 그 두 분이 하신 말이고요."
"대단하다는 말 들으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얘기는 안 했어요. 이 칸에 기림이 적혀 있어서 세어 본 거예요."
"그 말이 없으면 제가 뭐가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 말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만 보죠. 선생님이 날짜를 적고, 사정을 말하고, 두 군데서 일하는 자리에 붙어 있어요."
이 괘는 누구에게도 잘잘못을 매기지 않는다. 남편이 게으르다고도, 시누이가 돈 대신 말을 보낸다고도, 김 선배가 모른 척한다고도 적혀 있지 않다. 그 칸에 적힌 것은 밝은 것이 밖에서 온다는 말과, 경사와 기림이 있다는 말뿐이다.
그런데 기림은 한 일에 붙는다. 그가 2년 5개월 동안 한 일은 날짜를 적는 것과 남편의 사정을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이었고, 두 사람의 칭찬은 거기 붙었다. 칭찬이 붙은 자리를 그만두면 칭찬도 같이 없어지는데, 그 자리를 그만두는 일과 남편이 직접 말하는 일은 같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이 칸이 그려 놓은 모양이다.
한 줄로 말하면 — 그가 2년 5개월 동안 비워 두지 않은 것은 통장도 시간도 아니라, 남편이 자기 사정을 직접 말하는 자리다.
"종이 한 장만 쓸게요."
서랍에 빈 엽서가 몇 장 있다. 언제 받아 둔 건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한 장을 꺼내 뒷면에 네 줄을 적었다.
1. 남편에게 11월 8일 접수를 했는지 묻는다. 대답을 대신 하지 않는다.
— 쉽게 말하면, 밖에서 오는 말을 하나 기다리는 거예요.
2.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맙다고만 하지 않고 지금 어떤지를 한 가지 말한다.
— 쉽게 말하면, 남이 하는 말 옆에 선생님 말이 하나 붙습니다.
3. 11월 8일이 지나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쉽게 말하면, 올해 안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예요. 날짜가 지나가고, 접수를 아는 사람은 그대로 한 명입니다.
4. 7월에 남편분이 한 말을 선생님이 다시 꺼낸다. 막지 않는다.
— 쉽게 말하면, 그 말이 한 번 더 나올 자리를 두는 거예요.
"넷 다 오늘 움직인 칸에서 나온 거예요. 어느 게 맞다고는 거기 안 적혀 있고요. 접수가 돼 있는지도 그 칸에 없어요. 그건 제가 짐작해서 적을 게 아니고요."
그가 첫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왜 그걸 고르셨어요?"
"······그 사람이 뭐라고 할지 제가 모르거든요."
"모르면요."
"2년 5개월 만에 처음이에요. 모르는 거요."
거기서 더 묻지 않았다.
"한 칸이 바뀌면 그림이 하나 더 나와요. 혁(革)이에요. 가죽이고, 떼어 내서 고친다는 글자예요."
"바꾸라는 거예요?"
"그 장에 그런 말은 없어요. 이름만 말씀드린 거고요. 그리고 나중에 올 그림이 아니라, 오늘 나온 여섯 칸에서 한 칸만 손댄 그림이에요."
엽서를 접다가 그가 멈췄다.
"여기 주소 쓰는 칸이 있는데요."
"그 칸은 안 쓰셔도 돼요."
반으로 접어 가계부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커피 두 잔을 두 손으로 들었다. 식은 쪽은 뚜껑을 열지 않은 채였다.
"이거 차에 가져다줄게요."
"오늘 들은 건 제가 적지 않았어요. 적힌 건 선생님 종이에만 있고요."
오늘 나온 건 풍이었다. 아래 세 칸이 불이고 위 세 칸이 우레다. 움직인 건 위에서 두 번째 칸이었다.
그 칸이 굵어지면 위쪽이 우레에서 못으로 바뀐다. 택화혁(澤火革)이다. 풍(豊)은 그릇에 담아 올린 글자고 혁(革)은 떼어 낸 가죽이다. 한쪽은 담은 것이고 한쪽은 벗긴 것인데, 그림에서 손댄 데는 한 칸이다.
풍이 지금이고 혁이 나중이라는 말이 아니다. 한 칸을 눌러 봤을 때 무엇이 되는지를 옆에 같이 적어 둔 것이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노트를 펴서 지난주 장을 봤다.
이름은 없었다. 열흘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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